아프가니스탄 전쟁 (2001년~현재)

아프가니스탄 전쟁(영어: War in Afghanistan, 파슈토어: جګړه په افغانستان کی)은 2001년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침공 이후 발생한 전쟁이다. 미국은 초기에 캐나다영국의 지지를 받았고, 이후 모든 NATO 회원국을 포함한 40개국의 지지를 받았다. 이 전쟁의 일반적 목표는 알카에다를 해체시키고, 탈레반 정권을 축출해 아프가니스탄에서 알카에다의 안전한 작전 기지를 제거하는 것이었다. 아프가니스탄 전쟁은 미국 역사상 가장 긴 전쟁으로 분류된다.

2001년 9·11 테러 이후 미국 대통령 조지 W. 부시는 탈레반에게 오사마 빈라덴의 인도와 알카에다의 축출을 요구했다. 오사마 빈 라덴은 1998년부터 미국에 의해 이미 수배령이 내려진 상태였다. 탈레반은 빈라덴이 9·11 테러에 개입한 명백한 정황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인도를 거부하였고, 다른 관련자들의 인도 요구도 묵살했다. 미국은 지연 전락으로써 증거 요구를 거부했고, 2001년 10월 7일 영국과 함께 항구적 자유 작전을 개시했다. 아프가니스탄 내전에서 탈레반과 맞서 싸웠던 북부 동맹이 두 국가의 연합에 참여했다. 2001년 12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카불 확보를 비롯한 여러 임무에서 아프간 당국을 지원하기 위해 국제안보지원군을 설립했다. 같은 달 본 회의에서 하미드 카르자이아프가니스탄 과도 행정부의 지도자로 선출되었다. 2002년 카불의 로야 지르가가 아프가니스탄 임시 행정부가 되었다. 2004년 아프가니스탄 총선에서 카르자이는 대통령으로 선출되었고, 국호도 아프가니스탄 이슬람 공화국으로 변경되었다.

NATO는 2003년 8월부터 국제안보지원군에 개입하기 시작했고, 2003년 말 국제안보지원군의 지도권을 인수했다. 이 무렵 국제안보지원군은 43개국에서 파병된 군대로 이루어져 있었고, 이들 중 다수의 군대가 NATO 회원국에서 파병된 군인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아프가니스탄 주둔 미군의 일부도 NATO 사령부 예하에서 운용되었고, 나머지는 미국 사령부의 지시를 받았다.

초기 침공에서 패배한 이후, 무하마드 오마르가 탈레반을 재조직했고, 이들은 2003년부터 정부와 국제안보지원군에 맞서 반란을 일으켰다. 무기가 열악했고 수적으로 불리했음에도 불구하고 탈레반, 하카니 네트워크, 헤즈비 이슬라미 굴부딘을 비롯한 여러 무장단체의 반군들은 게릴라전, 교외 매복, 도심 지역에서의 자살 테러, 그리고 변절자들의 살해 등을 효과적으로 수행하며 전쟁을 소모전으로 이끌었다. 탈레반은 세계에서 가장 부패한 국가들에 속하는 아프가니스탄 정부의 취약점을 이용했다. 탈레반은 남부와 동부의 교외 지역에서 다시 영향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국제안보지원군은 2006년 마을 소탕 및 방어 계획인 대반란 작전을 위해 군사를 파병함으로써 이에 대응했다. 2007년부터 2009년까지 폭력이 급속하게 증가했다. 국제안보지원군이 탈레반 반군들과 맞서 싸우고 있는 동안, 북서 파키스탄 전쟁이 발발했다. 2009년 군대 수가 증가한 이래로, 2011년까지 군대 수는 향상세를 보였고, 2011년 아프가니스탄 주둔 미군과 국제안보지원군에서 활동하는 외국군은 140,000명에 이르렀다. 이들 중 100,000명이 미군이었다. 2011년 5월 1일 네이비 실은 파키스탄 아보타바드에서 오사마 빈라덴을 사살했다.

2012년 5월, NATO 지도자들은 NATO 시카고 회담에서 그들의 군대를 철수하는 것에 지지했다. 유엔 지원 평화 회담이 정부와 탈레반 사이에서 시작되었다. 2014년 5월, 미국은 그들의 주요 작전이 2014년 12월 종료된다는 것과 이들의 잔여 병력을 아프가니스탄에서 철수시킬 것을 선언했다. 2014년 10월, 영국군이 헬만드 주에 위치한 마지막 기지를 아프가니스탄 군에 인계했고, 이것은 영국군의 전투가 공식적으로 종료되었음을 의미했다. 2014년 12월 28일, NATO는 공식적으로 아프가니스탄에서 국제안보지원군의 전투 작전권을 종료시켰고, 아프가니스탄 정부에 완전히 책임권을 인계·전환시켰다. NATO는 ISAF의 계승단체로 RS 임무를 시작했다. 2017년 5월, 13,000명의 아프가니스탄 주둔 외국군이 철수에 대한 공식적인 계획 없이 남아있다.

수많은 사람들이 전쟁에서 사망했다. 4,000명 이상의 국제안보지원군과 민간인 접촉자들이 사망했고, 15,000명 이상의 아프가니스탄 국가안보군이 전사했다. 민간인도 31,000명 이상 사망했다.

명칭

해당 전쟁을 지칭하는 다양한 용어들이 있다.

  • 대한민국과 일본은 이 전쟁을 아프가니스탄 전쟁(일본어: アフガニスタン紛争)이라고 부른다.
  • 영어권과 중화권의 몇몇 자료에서는 이 전쟁을 아프간 전쟁(중국어: 阿富汗戰爭, 영어: War in Afghan)이라고 부른다.
  •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전쟁(영어: U.S. War in Afghanistan)은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침공만을 일컫는 말이다.
  • 앵글로색슨계 국가인 미국이 주도했기에 영국-아프가니스탄 전쟁과 묶어 제4차 앵글-아프간 전쟁이라는 표현도 쓰인다.

기원

아프가니스탄 내전

TAPI 송유관

1990년대 러시아는 카자흐스탄과 투르크메니스탄의 송유관을 확보하고 있었고, 카자흐스탄과 투르크메니스탄의 천연가스를 나르기 위해 송유관을 사용하는 것을 거부했다. 이에 따라 국제 석유 회사들은 이란과 러시아를 우회하는 가스관을 설립하고자 했다. 1998년 미국 대사관 폭탄 테러로 인해 송유관 설치 사업은 중단되었으나, 2002년 재개되었다.

9.11 테러

9·11 테러로 인해 생긴 뉴욕의 그라운드 제로

2001년 9월 11일 15명의 사우디아라비아인을 포함한 19명의 아랍인들이 미국에서 합동 테러를 저질렀다. 4대의 민항기가 납치되었다. 알카에다의 함부르크 조직의 조직원이었던 납치인들은 아메리칸 항공 11편유나이티드 항공 175편세계 무역 센터의 쌍둥이 빌딩에 강제로 충돌시켜, 항공기에 탑승한 승객 전원과 건물 안의 2,000명이 사망했다. 쌍둥이 건물은 무너졌고, 충돌로 인해 인근의 건물이 부서지거나 피해를 입기도 했다. 아메리칸 항공 77편은 워싱턴 D.C 인근의 펜타곤에 충돌했고, 유나이티드 항공 93편은 워싱턴 DC로 날아가던 비행기가 셰익스빌 인근에 추락해 탑승객 전원이 사망했다. 뉴욕주 보건부에 따르면 2009년 6월 기준으로 소방관과 경찰관을 포함해 사망자 수가 총 836명으로 집계되었다. 전체 사망자수는 19명의 납치범들을 포함해 2,996명이었다.

전개

항구적 자유 작전 - 아프가니스탄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침공

ISAF 국면

자유의 파수꾼 작전

RS 국면

같이 보기

Uses material from the Wikipedia article 아프가니스탄 전쟁 (2001년~현재), released under the CC BY-SA 3.0 licen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