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군사관학교 (일본)

육군사관학교(일본어: 陸軍士官学校 리쿠군시칸갓코[*], 영어: Imperial Japanese Army Academy)는 일본 제국 육군병과 장교를 양성하는 교육 기관이었다.

역사

기원

1868년(메이지 1년)에 교토에 설치된 병학교(兵學校, 훗날 병학소(兵學所)로 개칭)가 기원이다. 1869년(메이지 2년) 9월에 오사카로 이전하여 병학료(兵學寮)가 되었다. 1871년(메이지 4년)에는 도쿄로 이전하였다.

사관생도제도

개교 당시의 육군사관학교

1874년(메이지 7년) 10월에 제정된 육군사관학교 조례에 따라, 12월에 도쿄부 이치가야(市ヶ谷台)에 육군사관학��가 개교하였고, 1875년(메이지 8년) 2월에 제1기 사관생도가 입교하였다. 이른바 구 육군사관학교(舊陸軍士官學校)로 불린다. 교육제도는 프랑스식을 따랐으며 프랑스 육군에서 초빙된 교관이 지도하였다.

수학기간은 병과에 따라 차이가 있었는데, 보병과 기병은 처음에는 2년이었지만 1876년(메이지 9년)에 3년으로 변경되었다. 포병과 공병은 처음에는 3년이었지만 1876년(메이지 9년)에는 4년이 되었고, 1881년(메이지 14년)에는 5년으로 연장되었다. 포병과 공병은 재학기간이 길었고, 소위로 임관한 이후에도 학교에 남아 있었으며, 생도소위로 불렀다. 사관생도제도는 제11기생까지 계속되다가 폐지되었다(사관생도 졸업생 1285명).

학습 내용은 1학년에서 기하학·대수학·역학·이학·화학·지학, 2학년은 군정학·병학·축성학·철도통신학 등을 배웠다. 교육제도의 특징은 포병과 공병의 교육기간이 길었다는 점이다. 게다가 훗날 사관후보생제도(독일식 육군사관학교 제도)와는 다르게 프랑스식 유년학교 출신자를 병사나 하사관의 경험 없이 군대 내의 엘리트 장교로 양성하였다는 점이다. 이는 장교 적격자가 적었던 근대 프랑스에서는 유효하였다.

근대 프랑스에서는 독일과는 다르게 궁정 관료, 행정·사법 관료, 지주 등의 귀족 자제로부터 장교를 배출하는 장교 임용 제도였고, 프랑스 혁명나폴레옹 전쟁 중에 소멸하였다. 프랑스 혁명군 및 나폴레옹 군에서 장교는 평등하게 병사와 하사관의 호선에 의해서 선출되어 군단을 관할하는 원수에 의해서 채용되어 임용되었다. 그러나 호선 장교는 과거 전문적인 사관학교 교육을 받지 않았기 때문에 기병 원수 미셸 네(Michel Ney)와 같이 각 병과 간의 전술의 융통성을 결여하거나 왕성한 전의로 공세만을 고집하여 철퇴 시기를 잘못 판단하는 등 전략적 시야가 좁은 인물도 있었다.

프랑스 혁명과 나폴레옹 전쟁 중에 귀족 출신 장교의 소멸 후, 근대 프랑스에서는 유복한 관료나 부르주아지로부터 고학력 자제를 모집하여 시험제도에 의해서 유년학교, 사관학교에 입학시켜 사관학교 졸업 후에 장교로 임용하였다. 그들의 교양있고 유복한 부모를 회유하기 위해 병사나 하사관으로부터 분리된 완전한 엘리트로서의 장교 교육제도가 성립하였다.

일본의 프랑스식 구 육군사관학교에는 프랑스식 유년학교 출신자 뿐만 아니라 보신 전쟁에 참전하고 병사에서 진급한 하사관이나, 다나카 기이치(田中義一)와 같이 하사관 양성 기관인 교도단(教導團) 출신의 하사관 등도 입학하였다. 프랑스식 구 육군사관학교의 특색의 하나는 이와 같은 하사관을 장교로 임용하는 것이었다. 이들은 소위가 되어 육대벌(陸大閥)이 출현하기 이전 조슈벌이나 사쓰마벌 우에하라 유사쿠(上原勇作)파를 중심으로 한 일본 육군 장교단의 주축이 되었다.

한편, 프랑스식 유년학교로부터 프랑스식 구 육군사관학교에 입학한 젊은층이 있었다. 이들의 상당수는 메이지 유신 이후에 몰락한 빈곤한 구 번사와 한학이나 수리 등의 초등교육을 거친 고학력 자제였다. 훗날 독일식 육군사관학교 제도와는 다르게 이들은 평상시 중대 내무반으로 파견되는 일이 없었기 때문에 병사나 하사관의 경험을 없었다. 이때문에 프랑스식 유년학교 출신으로 프랑스식 구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한 청년 소위는 장교가 되어도 중도에 퇴직하는 경우가 상당수 나왔다.

또한 프랑스식 구 육군사관학교 입학자에는 구제 중학교(舊制中學校) 출신자는 포함되지 않았다. 1886년(메이지 19년) 4월에 칙령 제15호 《중학교령》에 의해서 구제 심상중학교가 고등중학교(훗날 구제 고교)와 함께 설치되었다. 즉 프랑스식 구 육군사관학교는 1886년(메이지 19년) 칙령 제15호 《중학교령》이 공포되기 이전의 제도였기 때문이다. 구 제2기의 이구치 세이고(井口省吾)나 구 제11기의 나라 다케지(奈良武次)가 구제 중학교 졸업이 아니고 사숙이나 사립학교 졸업 후에 프랑스식 구 육군사관학교에 입학한 것은 구제 중학교의 제도가 아직 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독일식 《육군사관학교관제》의 공포는 1887년(메이지 20년)에 칙령 제25호에 의해서 였으며, 《제국대학령》, 《중학교령》의 공포 이후에 있었다.

1877년(메이지 10년) 세이난 전쟁 당시에는 입교하여 아직 1 ~ 2년 정도밖에 안되는 제1기생과 제2기생이 견습생으로 동원되었고, 교장 소가 스케노리(曾我祐準)와 육군경 야마가타 아리토모(山県有朋)까지도 출병하였다. 이 영향으로 같은 해 2월에 입학할 예정이던 제3기생은 세이난 전쟁으로 같은 해 5월까지 대기 상태에 있었다. 아키야마 요시후루(秋山好古)도 그 중의 한 명이다.

사관후보생제도

1887년(메이지 20년)에 프로이센식 사관후보생제도가 채용되어, 1889년(메이지 22년)에 제1기생이 입교하였다. 사관후보생은 육군유년학교 및 구제 중학교(현재 중학교 1학년에서 고등학교 2학년에 상당) 출신자로부터 배출되어 지정된 연대나 대대(원대(原隊)라고 함)에서 하사관병(일등병 또는 상등병으로 시작)으로서 부대 근무를 거친 후에 사관학교에 입교하였다. 하사관병으로서 부대 근무를 거치는 점이 해군사관학교와 달랐다.

중학교 출신자는 12월에 일등병으로서 입대히여 다음 해 6월에 상등병으로 승진하였다. 유년학교 출신자는 중학교 출신자가 상등병이 되는 것과 동시에 상등병으로서 입대하였다. 8월에 오장(伍長)가 되었으며, 12월에는 군조(軍曹)가 되었다. 사관학교를 졸업하면 조장(曹長)으로 진급하여 견습사관이 되어 원대에 복귀하였다. 원대의 장교단의 추천에 의해 소위로 임관하였다.

1896년(메이지 29년) 5월 15일에 육군중앙유년학교 조례 및 육군지방유년학교 조례가 제정되어 유년학교의 수학기간이 중앙 및 지방 모두 5년이 되었다. 유년학교 학생간의 유대가 깊어지는 것과 동시에 유년학교 출신자와 중학교 출신자와의 사이에 구별 의식이 강해졌다. 신제도의 중앙유년학교 출신자는 육사 제15기 이후이다.

1909년(메이지 42년, 융희 3년) 7월 30일에 제정된 대한제국 칙령에 의해서 대한제국의 육군무관학교는 폐지되었고, 대한제국 육군 무관의 양성은 위탁에 의하여 일본 육군사관학교에서 행해지게 되었다.

사관학교 예과·본과 제도

1920년(다이쇼 9년)에 종래 육군중앙유년학교가 육군사관학교 예과, 종래 육군사관학교가 육군사관학교 본과로 되었다. 예과의 수학기간은 4월 1일에 입교하여 2년 후 3월에 졸업하였다. 예과 재학 중에는 계급은 부여되지 않고, 졸업 시에 상등병으로 병과 및 원대의 지정이 이루어졌다. 졸업 후 4월부터 반년 간 부대에 배치되고(이 기간에 오장으로 승진), 군조로 승진하면서 10월에 본과에 입교하였다. 본과의 수학기간은 1년 10개월로 다음 해 7월에 졸업하여 견습사관(계급은 군조)이 되었다. 신제도의 육사 예과 출신자는 본과 제37기생 이후이다.

사관학교·예과사관학교

1937년(쇼와 12년)에 육군사관학교 본과는 육군사관학교라고 개칭되었고, 육군사관학교 예과는 육군예과사관학교가 되었다. 육군사관학교는 자마로 이전하였고, 쇼와 천황으로부터 상무대(相武台)라는 이름이 주어졌다. 1938년(쇼와 13년)에 육사 본과의 수학기간이 1년 8개월로 단축되었고, 1941년(쇼와 16년)에는 1년으로 단축되었다. 한편 이와는 별도로 1939년(쇼와 14년)에는 갑종간부후보생의 교육기관으로서 육군예비사관학교가 설치되었다. 1941년(쇼와 16년)에 육군예과사관학교는 아사카로 이전하여 진무대(振武台)라는 이름이 주어진다. 1945년(쇼와 20년) 6월에 제58기생이 졸업하여 소위로 임관하였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에 상무대는 주일 미군에 접수되어 현재 캠프 자마(Camp Zama)의 일부가 되었다. 육군사관학교가 폐교되면서 제59기생에게는 특별히 졸업 자격이 주어졌다. 제60기생은 8월 28일 각의 결정에 의하여 필기시험 없이 문부성 소관의 학교에 전입시키는 조치가 취해졌지만 당시 일고(一高)는 그 지시에 거부하고 전입시험을 실시하였다.

육군항공사관학교

1937년(쇼와 12년) 10월 1일에 항공 병과 장교로 육성할 생도 및 학생의 교육을 실시하기 위해서 육군항공사관학교분교가 설치되었다. 1938년(쇼와 13년) 12월에 분교는 육군항공사관학교로서 독립하였고, 1941년(쇼와 16년)에 수무대(修武台)라는 이름이 주어졌다. 항공사관학교는 전문 교육이기 때문에 조기 입교를 시켜서 부대 근무를 하지 않았다.

관련자 명단

2004년에 제정된 대한민국의 《일제강점하 반민족행위 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 제2조 10호는 ‘일본 제국주의 군대의 소위(少尉) 이상의 장교로서 침략 전쟁에 적극 협력한 행위’를 친일반민족행위로 규정하였다(대한민국 정부 발표 친일반민족행위자- 대한민국 정부 발표 친일반민족행위자).

사관생도

사관후보생

육군사관학교 예과 / 본과

참고문헌

  • 이기동, 《비극의 군인들》, 일조각, 198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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